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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호적수들 (적장들, 1)잡다한 이야기들(사회) 2021. 7. 17. 15:47728x90
나폴레온 전 세계 역사상 손꼽히는 명장이고 유럽을 석권하였지만, 결국 유럽 동맹국들에게 패배합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뛰어난 나머지 그에게 승리한 장군들은 나폴레옹만큼 유명하지는 않은대요, 오늘은 나폴레옹에게 대항한 주요 장군들을 알아보았습니다.
게프하르트 레베레히드 폰 블뤼허
게프하르트 레베레히트 폰 블뤼허 폰 발슈타트 후작(독일어: Gebhard Leberecht von Blücher, Fürst von Wahlstatt [gɛphaɐt lebəʁɛçt fɔn blyçɐ][*]; 1742년 12월 16일 - 1819년 9월 12일)는 프로이센의 육군원수입니다. 그는 시민들로부터 전진원수라고 불렸는데, 그의 성격이 공격적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14살 때 아버지, 형제들과 함께 스웨덴군에 입대하였는데 포메라니아에서 전쟁을 하던 중 프로이센군의 포로가 되었고, 바로 프로이센군에 입대하였습니다. 7년 전쟁때는 경기병부대의 장교로 많은 전공을 세웠습니다. 전후 그의 사나운 성격 때문에 주변 사라들과 트러블을 많이 일으키게 되었고 1773년 군대를 떠나서 15년간 전원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후 다시 군에 복귀하였습니다. 1792년 프랑스 혁명 전쟁이 발생하고 블뤼허는 그가 유능한 기병 지휘관임을 보여주게 됩니다. 1794년에는 소장으로 승진하였고, 1801년에는 중장으로 승진합니다. 1806년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에서는 프랑스군에 포로로 잡히기도 하였으나, 그후 포로교환으로 석방됩니다. 1809년에는 대장으로 승진하였고, 1813년에는 프로이센군 총사령관에 임명됩니다. 1813년 카츠바흐 전투, 라이프치히 전투 등에서 프랑스군을 격파하는데 많은 역할을 하였습니다. 1814년 블뤼허는 발슈타트 대공의 작위를 하사받고 퇴역합니다. 1815년 나폴레옹이 엘바섬을 탈출하여 프랑스로 돌아오자 다시 입대하여 프로이센군 총사령관이 되었고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군 등과 프랑스군을 협공하여 다시 승리하게 됩니다. 그후 다시 퇴역하고 1819년 77세로 사망합니다.
샤른호르스트
게르하르트 요한 다피트 폰 샤른호르스트(Gerhard Johann David von Scharnhorst,1755년 11월 12일 - 1813년 6월 28일)는 프로이센 왕국의 군인으로 프로이센의 군제개혁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참모본부제도 탄생의 아버지로 군대의 역사상에도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는 하노버의 부농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도 기병대의 하사관 출신이었다고 합니다. 1773년 빌헬름스타인 사관학교에 입학하였고 1778년 하노버군에서 소위로 군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는 군생활을 하면서 군사이론과 관련한 다수의 논문, 서적을 저술하였으며, 1788년 출판된 『장교를 위한 응용군사과학(Handbuch für Offiziere in den anwendbaren Teilen der Kriegswissenschaften)』 및 1792년 출판된 『야전필휴[1](Militärisches Taschenbuch für den Gebrauch im Felde)』는 여러 번 증간되었습니다. 이러한 활동으로 그는 군사이론가로 유명해졌습니다.
1793년부터 프랑스 혁명전쟁이 시작되자 그는 뛰어난 군사적 역량으로 실전지휘관으로서도 유능하다는 것을 증명하였습니다. 1804년에는 병참총장부 제3여단장(참모본부 차장)이 되었습니다. 1805년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에서 프로이센군은 프랑스군에 대패하였으나 질서있는 후퇴로 프로이센군의 피해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1808년에는 군사총무군장이 되었고, 한 때 프로이센군을 떠나기도 하였으나 1813년 다시 프로이센군에 들어가서 병참총장(참모총장)이 되었습니다. 1813년 5월 2일 뤼첸전투에서 정강이에 총상을 입었으며, 6월 28일 상처가 악화되어 패혈증이 되었고 프라하에서 사망하였습니다. 그는 프로이센 군대에서 중장까지 진급하였습니다.
그나이제나우
아우구스트 빌헬름 안토니우스 나이트하르트 폰 그나이제나우 백작(August Wilhelm Antonius Graf Neidhardt von Gneisenau, 1760년 10월 27일 ~ 1831년 8월 23일)는 프로이센 왕국의 군인이자 육군원수로서 참모본부의 선구적인 역할을 하여 샤른호르스트와 함께 군대 역사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1760년 독일 중부 작센왕국의 토르가우 근교의 작센군 포병장교 가문이자 나이트하르트 백작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귀족 출신이기는 하지만, 그리 잘사는 집안은 아니였으며 1777년 에르푸르트 대학에 입학했으나 2년후 퇴학한 후 오스트리아군에 입대합니다. 1782년에는 먼 인척관계가 있던 오스트리아의 폰 그나이제나우 가문이 단절되어 그의 아버지가 성씨를 물려받으면서 나이트하르트 폰 그나이제나우라는 2중성씨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바이로이드-안스바흐 변경백에 장교로 가게 가게 되었고 미국 독립전쟁에도 파병됩니다. 1786년에는 프로이센군의 보병 중위에 임관했습니다. 1806년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에서 나폴레옹에게 패하여 포로로 잡히기는 하였지만 최후까지 저항을 계속하였습니다. 1807년에는 프랑스군에 의해 포위된 발트해의 코르베르크 요새에 해상을 통해 파견되어 틸지트 조약이 체결된 1807년 7월까지 지켜내서 중령으로 승진하고 프로이센군 최고의 명예인 프루 르 메리트 훈장을 수여받게 됩니다.
그 후 그는 샤른호르스트가 조직한 군개혁위원회의 위원이 되어 샤른호르스트의 가장 뛰어난 보좌관으로 활동합니다. 1813년에는 프로이센의 참모차장이 되었으며, 1813년 샤른호르스트가 사망하자 그나이제나우는 참모총장이됩니다. 라이프치히 전투에서는 상당수의 작전을 입안하여 나폴레옹군대의 격파에 크게 공헌하였고 1815년 나폴레옹이 엘바섬을 탈출한 후, 총사령관인 블뤼허가 부상을 당한 후에는 그를 대신하여 프로이센군을 지휘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워털루에서 프로이센군을 훌륭하게 지휘하여 대프랑스 동맹군의 승리에 큰 공헌을 합니다.
전후 그나이제나우는 코프렌츠군 사령관에 임명되었으며, 1816년 퇴역한 후 1818년 베를린지사 및 국회의원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1825년에는 워털루 전투 10주년을 기념하여 육군원수가 되었습니다. 1831년에는 변경사령관에 임명되었으나 포즈난에서 콜레라에 감염되어 사망하였습니다.
베르나도트 (칼 14세 요한)
장밥티스트 쥘 베르나도트(프랑스어: Jean-Baptiste Jules Bernadotte, 1763년 1월 26일 ~ 1844년 3월 8일)는 프랑스의 군인이자 칼 14세 요한(스웨덴어: Karl XIV Johan, )으로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국왕으로 스웨덴의 현(現) 왕가인 베르나도테 왕조의 시조입니다.
그는 프랑스 남부 포의 법률가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1780년에 프랑스 육군에 입대합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을 때 그는 왕립군의 하사관이었으나, 그 이후 대령까지 진급합니다. 1794년 그는 플뢰뤼스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워 1794년 프랑스 육군 소장으로 그 해 11월에는 중장으로 진급합니다. 그는 나폴레옹의 옛 약혼자 데지레 클라리와 결혼하였고, 1804년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하자 원수로 진급하고 1806년에는 퐁테코르보 대공에 임명되었습니다. 또한, 1806년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에서 블뤼어장군을 포로로 잡았는데, 그래서 블뤼어와 베르나도트는 평생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베르나도트는 나폴레옹 전쟁 당시 스웨덴군 포로들에 대해 관대한 대우를 해준적이 있어 스웨덴으로부터 호의를 사고 있었습니다. 당시 스웨덴왕가의 왕위가 단절되었기 때문에 베르나도트는 1810년 스웨덴의 왕자가 됩니다. 그 이후 그는 반나폴레옹 연합군에 참여하여 프랑스군의 내부 사정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여 연합군의 승리에 공헌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일로 프랑스 사람들에게 배신자로 여겨지게 됩니다.
이후 베르나도트는 1814년 노르웨이를 스웨덴에 병합하는 킬 조약에 성공하였고, 1818년 스웨덴-노르웨이 연합왕국의 칼 14세 요한으로 즉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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