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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 (Antiochus IV Epiphanes)
    잡다한 이야기들(사회) 2020. 8. 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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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대로 서양역사에서 적그리스도의 예표로 언급되는 안티오코스 4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Antiochus IV Epiphanes, 기원전 215년 ~ 기원전 164년, 제위 기원전 175년 ~ 기원전 164년)에서 안티오코스는 “경쟁을 끝내다”라는 뜻이 있으며, 에피파네스는 “빛나는”이라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알렉산더 대제의 계승국인 셀레우코스 왕국을 기원전 175년에서 죽을 때까지 십여년간 다스렸습니다.

    그는 전전왕인 안티오코스 3세의 아들이며 전왕인 셀레우코스 4세 필로파토르의 형제로 태어났습니다. 원래의 이름은 미트리다테스로 안티오코스라는 이름은 형 사후에 왕위를 승계할 때 개명했다고 합니다. 그는 기원전 188년 아파메아 조약에 따라 로마 공화국에 정치적 인질로 보내졌습니다. 그의 형 셀레우코스 4세는 기원전 187년 아버지에 이어 왕위에 올랐으며 안티오쿠스는 셀레우쿠스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조카 데메트리오스 1세 소테르와 교환되어 인질에서 풀려났습니다. 이 후 안티오코스는 아테네에 살았고, 기원전 175년에 그의 형이 암살되었을 때에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셀레우쿠스 4세는 기원전 175년 9월 망명자 헬리오도로스에 의해 암살되었고, 안티오코스 4세는 페르가몬의 에우메네스 2세의 도움으로 기원전 175년 11월에 시리아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셀레우쿠스 4세의 아들 데메트리오스 1세 소테르는 여전히 로마에서 인질이었기 때문에 안티오쿠스는 셀레우쿠스의 또 다른 아들(기원전 170년 살해됩니다. 권력이 무서운 겁니다)과 같이 공동왕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 안티오코스 4세를 묘사한 작품, 동전, 흉상(출처 : wikipedia.org)

     

    그는 즉위 후 안티오코스는 로마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기원전 173년 로마에 대사를 파견하기도 합니다. 그 후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왕조가 셀레우코스왕조에 선전포고를 하는데요, 안티오코스 4세는 프톨레마이오스군을 물리치고 펠루시움을 점령하며 이집트를 역공하여 알렉산드리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이집트를 정복합니다.

    기원전 168년 안티오쿠스 4세는 이집트에 대한 두 번째 공격을 주도했고 키프로스에 함대를 파견하기도 합니다. 그가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하기 전에, 가이우스 포필리우스 라에나스라는 로마대사가 이집트와 키프로스에 셀레오코스 군이 쳐들어간다면 로마와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하여 이 공격은 중지되게 됩니다.

    기원전 168-167년경에 유대인들에 대한 헬레니즘 정책을 강화하여 예루살렘 신전에 주피터(제우스) 형상을 모셔 놓고 우상예배를 강요했습니다. 이 행위 때문에 그는 이후로 적그리스도의 원형으로 지속적으로 회자됩니다. 그리고 이 일로 인해 마카비가(家)의 시조인 모딘의 제사장 마타티아스는 백성을 규합하여 시리아군에 대한 유격전을 벌이게 됩니다. 이 항전은 그의 아들 유다, 요나단, 시몬에게 계승되어 주전 142년 마침내 유대인의 종교적, 정치적 독립이 성취되고, 하스모니안 왕조가 성립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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