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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베리아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역사, 사회, 국제시사 2020. 9. 13. 09:39728x90
오늘은 아프리카 서부의 작은 나라 라이베리아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라이베리아의 면적은 약 11만 ㎢로 우리나라(남한)보다 조금 넓고, 인구는 약 500만명으로 부산보다 조금 많은 수준입니다. 라이베리아는 미국에서 건너온 해방노예들이 시초가 되어 건국된 나라입니다. 국가이름 자체가 영어의 자유(Liberty)의 땅에서 유래하였습니다.
그림. 라이베리아의 지도와 위치입니다. 19세기 초반부터 미국 식민지 협회( American Colonization Society)는 지금의 라이베리아 땅에 4000명이 넘는 해방노예들을 보냈습니다. 이들 해방노예들은 1847년 독립선언서를 공표하였습니다. 이들은 미국의 먼로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수도 이름을 먼로비아로 지었습니다. 미국에서 노예생활에 지친 이들은 국가의 이름처럼 모든 사람들을 평등하게 대했을 것 같지만, 실은 이들 해방노예들은 아프리카에 있는 원주민들을 자기들이 미국에서 당한 것 처럼 대규모 농장(plantation)에서 노예처럼 일을 시켰습니다. 이들 해방노예(아메리코-라이베리안, Americo-Liberian)들은 자신들끼리만 결혼하여 특권계층을 유지하였고, 미국의 문화적 전통을 유지하였습니다. 지금도 라이베리아의 국기는 미국국기와 상당히 유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림. 라이베리아의 국기입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라이베리아는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의 지원을 받으며, 어느정도 번영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소수의 특권층들만 잘살고, 대다수의 국민들은 노예처럼 사는 그런 사회구조였지만요. 20세기 초 아프리카의 독립국은 에티오피아와 라이베리아가 거의 유일했습니다. 20세기 초중반 라이베리아에는 공항까지 있었고,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국가까지 개입한 노예제도에 대해 국제사회에서의 지적이 항상 있었고, 이 일로 대통령이 사임하기까지 합니다. 또한, 사회는 어느정도 안정되었지만 20세기 중반에 있었던 독재와 사회적 불평등은 라이베리아를 언제든지 불안정하게 할 수 있는 요인이었습니다.
1980년 이와같은 불평등한 사회구조에 대한 반발로 쿠데타가 발생합니다. 당시 상사였던 새뮤얼 도(Samuel Doe)등은 쿠데타를 일으키고 독재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라이베리아는 수십개의 부족으로 구성된 국가였고, 대다수의 부족들은 새뮤얼 도의 정책에 반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1989년 내전이 시작되었고, 새뮤얼 도는 1990년 처형됩니다. 라이베리아는 1989년부터 2003년까지 내전이 지속적으로 진행되었고, 1997년부터 라이베리아의 대통령이자 독재자였던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가 2003년 물러나면서 내전이 종식되게 됩니다. 참고로 찰스 테일러는 2012년 국제 형사 제판소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2005년 민주적 선거에 의해 존슨 서리프(Ellen Johnson Sirleaf)가 아프리카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며, 2017년 축구선수로 영국 프리미어리그 멘체스터 시티에서 선수 생활을 하기도 한 조지 웨아(George Weah)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지금까지 라이베리아를 통치하고 있습니다.
라이베리아는 2014~2016년 서아프리카 에볼라 사태로 약 1만여명이 감염되었고 이 중 5000여명이 사망하기도 하였습니다. 장기간의 내전과 전염병 사태들로 라이베리아의 국민소득은 매우 낮은 상황이며, 대다수의 국민들이 빈곤층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림. 라이베리아의 산업구조입니다. 선박업의 비중이 높습니다. 라이베리아는 다이아몬드와 금 등 다량의 지하자원들이 매장되어 있을 것으로 여겨지나, 장기간의 내전 등으로 많이 개발되지는 못한 상황입니다. 이웃나라 시에라리온 또한 상황이 비슷하며, 이와같은 상황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이 주연한 블러드 다이아몬드(blood diamond)라는 영화로 국제적으로 유명해 졌습니다.
라이베리아의 최대 산업은 운송업입니다. 라이베리아는 선박세가 싸서 전세계의 상당수의 상선 등이 라이베리아 국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파나마에 이어 두 번째 규모라고 하며 3500여척의 배가 라이베리아 국적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전 세계 배의 약 11 %라고 합니다. 라이베리아 국민의 70 %는 농업에 종사하며, 주 생산품은 천연고무, 바나나, 팜오일, 쌀 등이라고 합니다.
내전 등의 영향으로 아직까지 성폭력 등의 문제가 큰 편이며, 최근 성폭력 등에 대응하자는 움직임도 있었습니다. 내전기간 중 십여년간 서로 싸우면서 앙숙이 된 사람들이 다시 한 나라를 이루게 되었을 때의 사회 통합의 문제, 소년병 때부터 전투에 참여하면서, 국민의 많은 사람들이 범죄자가 된 나라에서 과거사 정리를 위해 어느 수준까지 사람들을 처벌하고 용서해야 하는지의 문제는 현재 라이베리아가 가지고 있는 커다란 문제라고 하네요.
한 때, 아프리카에서 선진국 반열에 올랐지만, 국민적 통합을 이루지 못해 극빈국으로 전락하고, 풍부한 지하자원도 활용하지 못하는 라이베리아를 보면서 지금의 우리나라가 기술과 문화산업 등으로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지만 이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면 다시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면서 살아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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