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카라과와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니카라과는 중남미에 있는 국가로 코스타리카 북쪽,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 남쪽에 있는 국가입니다. 면적은 13만 ㎢로 북한보다 경상남도 정도 크고, 인구는 약 670만명으로 부산광역시와 경상남도의 인구를 합친 것과 비슷합니다. 니카라과는 니카라과 호수를 경유하는 니카라과 운하의 건설예정지로도 유명한대요, 니카라과 운하는 중국자본의 지지를 받고 있기도 합니다.
니카라과는 20세기 중반인 1937년부터 1979년까지 약 40년간 소모사(Somoza)가문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소모사가의 부패와 비리, 독재는 상당히 심각하여 소모사 가문이 니카라과 GDP의 약 40%를 차지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소모사가문의 독재는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의 반란을 일으켰으며, 1979년 니카라과의 독재가 무너지고 사회주의 정권이 수립되었습니다. 산디니스타 정권의 대통령은 다니엘 오르테가였습니다. 1980년대 니카라과는 미국의 엄청난 경재재제를 받으면서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등 국가경제가 거의 파탄수준에 이르러 결국 산디니스타 정권은 1990년 선거에서 패배하여 다시 보수세력에 정권을 내주고 야당으로 밀려나게 됩니다. 그러나 보수세력 역시 비리가 심했고, 경제적으로도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에 2006년 다니엘 오르테가가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게 됩니다.
다니엘 오르테가는 1945년 11월 11일 니카라과의 촌탈레스주에서 태어났습니다. 마나과 중미대학교를 중퇴하였고, 1960년대 산디니스타 혁명에 투신합니다. 그 후 7년간 감옥살이를 하기도 하였고, 석방 후 쿠바로 망명가서 군사훈련을 받은 후 1974년에는 산디니스타 해방전선의 지도자가 됩니다. 그리고 1979년 혁명을 성공시키고 대통령이 됩니다. 그는 정권을 잡은 뒤 소모사 집안의 사유지의 국유화와 토지개혁을 실시하였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제제 등으로 니카라과의 경제가 파탄나서 1990년 대선에서 패배하여 정권을 잃게 됩니다. 그는 쿠데타를 일으킬 것이라는 일부의 우려를 불식시키면서 야당 대표로 충실하게 생활합니다. 물론 야당의 대표로 있으면서 자신의 동생을 니카라과 군의 사령관으로 재직하게 하면서도 정치적 영향력을 충분히 유지하도록 노력하기도 합니다.
드디어 보수세력의 분열과 국민들의 실망 등으로 2006년에는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게 됩니다.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은 야당에 있었던 1998년 의붓달 성추행 사건으로 정치적 위기를 겪기도 하였으며, 1980년대 니카라과 경제를 파탄에 이르게 했다는 않 좋은 이미지가 있었지만, 다시 재기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다시 대통령이 된 뒤로 보수세력과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또한 1980년대와 다르게 니카라과의 경제도 매년 4~5%의 안정된 성장세를 보여주었고, 공공서비스도 확충하여 높은 지지율을 얻게 됩니다. 이와 같은 지지율에 힘입어 2011, 2016년 대선에서 연달아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 선거 출마 제한과 관련된 법률을 폐지하는 등 독재와 장기집권은 추구한다는 비판을 듣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그의 부인이 부통령에 같이 당선되기도 하였으며, 그의 자식들도 정계에 진출하거나, 기업가가 되는 등 소모사에 이은 또 다른 독재자가 되었다는 비판을 지속적으로 듣고 있습니다. 또한 과거 사회주의 혁명가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보수 우익 정치인들과 타협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면서 산디니스타 혁명정신을 내던져버렸다는 비판을 듣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도 니카라과는 이웃나라인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등과 비교하였을 때 상당히 치안이 양호한 편이라는 얘기를 듣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던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지도자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그 나라를 구성하는 국민의 얘기에 먼저 귀기울이는 나라가 되었으면 합니다.